2.5D/메이즈러너

[뉴트갤리] If I were not (10)

ㄷㄷㄷㄷ 2023. 1. 26. 11:03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머리가 아팠다. 천장이 빙빙 돌았다. 술을 강권하지도 않고 술자리라기보다는 식사에 가까웠던 홈파티와는 달리 선수들끼리의 자축 파티는 초반부터 독한 술이 나왔다. 다들 자연스레 마시는 분위기여서 그냥 색이 독특한 음료인 줄 알았던 갤리는 한 모금을 마시다 말고 거의 뱉다시피 했다. 주변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권하는 통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안주도 맵고 짜서 입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술에 면역이 없어서인지 반 잔도 마시지 못하고 취해서 갤리는 결국 누워버리고 말았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매니저는 몸이 재산인 사람들이 이렇게 독한 술을 마셔서야 쓰겠냐며 한참 동안이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물론 갤리는 그 잔소리를 듣다 말고 정신을 잃어버렸지만. 그리고 나니 집이었다. 이게 숙취라는 거구나. 갤리는 끙끙 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니저가 두고 간 것인지 테이블 위에는 작은 알약과 물 한 컵이 놓여있었다. 포장지에는 진통제라고 쓰여 있었다. 갤리는 더듬더듬 글자를 읽고 이해한 후 알약을 삼켰다.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있는데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갤리는 손만 테이블로 뻗어 몇 번을 헛짚은 후에야 핸드폰을 집어 올릴 수 있었다. 문자가 화면에 떠올라 있었다. 매니저였다. 오늘 연습은 빼두었으니 쉬라는 이야기였다. 갤리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가 배 위에 손을 떨구었다. 배가 무거워서 손을 치우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서인가.

핸드폰이 한 번 더 진동을 울렸다. 갤리는 이제는 거의 신경질을 내며 손을 들어올렸다. 화면을 열자 또, 문자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뉴트였다. 갤리는 눈을 깜박이며 문자를 읽어내렸다.

「바쁘세요?」

짧은 질문이었다. 갤리는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소파의 등받이 아래쪽에 머리를 묻고 이마를 비볐다. 온기가 없는 것에 몸이 닿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갤리는 핸드폰 버튼을 꾹꾹 눌렀다.

「아뇨 괜찮아요」

문자를 보내고 나자 목이 말라왔다. 물을 한 컵 마셨는데도 그랬다. 갤리는 부엌으로 가서 작은 물병을 하나 따 마셨다. 투명한 병이 바닥을 드러내자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거실에서 희미하게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뛰자니 머리가 울렸다. 걷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갤리는 비척비척 걸어서 거실을 향했다. tv를 켜자 시끄러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도무지 견딜 수 있는 소음이 아니라 갤리는 그냥 tv를 껐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오늘 휴일이세요?」

「네」

좀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더 길게 쓰기도 애매한 데다, 꽤나 피곤했다. 갤리는 이제 그냥 오늘 하루는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고, 자는 것이 내일 연습을 하는 데에 차라리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피로도 푸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침실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핸드폰이 울렸다.

「그럼 혹시 뵐 수 있을까요?」

갤리는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다.

-

뉴트는 꽤나 절박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아주 꺼림칙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뉴트는 목덜미를 더듬었다. 화장품이 묻어났다. 뉴트의 피부 톤에 맞추어 특수 제작된 화장품은 손끝에서도 감각만이 조금 있을 뿐 별 티가 나지 않았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향수 냄새가 나는 화장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동의했다. 매끈한 피부에는 점 하나 없었다. 어디에도, 어떤 것도.

약속된 것이 없을 것이라고, 그는, 어쩌면 그들은 선언했다.

일부러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말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생각에 잠길 수도 없었다. 경호팀이 온 감각을 기울이고 뉴트의 일거수 일투족을 뒤쫓고 있을 것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앞 좌석 등받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손님을 희한하게 생각하는 듯 했지만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늪에는 바닥이 없어야만 한다. 아무 것도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곧 떠날 것이었고, 그것에조차 자신에게는 없는 약속된 것이 존재해야, 하는데.

안 좋은 소문이 있다고. 뉴트는 기억을 더듬었다. '안 좋은' 소문이 있다고. 그리하여 뉴트는 갤리를 추적했다. 헛소문일 거라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런 소문을 퍼트렸을 것이고 그래서-

그래서? 뉴트는 그 부분이 비어있다는 걸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다. 많은 경계와 심사와 조사를 거쳐 먼 거리를 돌아 비어있는 공간을 깨달았다. 그런 소문이, 갤리를 대상으로 퍼진다고 하여도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 의미가 없으니까. 숨어있었으니 밝힐 사람도 없다. 밝힌다고 해도 그 과정은 합법적이기 힘들다 못해 불가능했다. 정치적인 입장에서야 불리했지만, 그런 정치는 뉴트의 특기였다. 익숙하다 못해 이골이 나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꽁꽁 숨어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뉴트에게 약속된 것은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뉴트는, 그의 가장 가까운 주변인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

기사가 의아하게 뉴트를 불렀다. 택시가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뉴트는 급히 카드를 내밀어 요금을 계산했다. 기사는 영수증을 찢어서 카드와 함께 내밀었다. 뉴트는 급히 내렸다. 뒤에서 차가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만나기로 한 곳은 큰 길에서 조금 들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은 아니지만 사람이 적기 때문에 보통은 가기를 꺼린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는 택시를 타고 갈 만큼 돈이 많은 인간으로 비쳐서는 안 되었다. 골목을 몇 번 돌아 들어가자 만나기로 한 카페가 나타났다. 뉴트는 성큼성큼 들어가 갤리를 찾았다.

뉴트는 물어볼 것이 많았다. 궁금한 것이 많았고, 걸리는 것이 많았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어긋나는 퍼즐 조각이 지나치게 많았다. 점원이 안내해 준 문이 열렸다. 갤리가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

의자가 차갑고 딱딱했다. 갤리는 마른 세수를 몇 번 했다. 눈에 눈물이 말랐는지 조금 뻑뻑한 감이 있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계속 아팠다. 차가운 것이 먹고 싶어서 일부러 찬 음료를 시켰다. 에어컨이 지나치게 세서 추위가 느껴지는 데도 차가운 것이 먹고 싶었다. 얼음 조각이 입에서 씹히자 그나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찬 것을 먹었을 때의 두통이 없지는 않았지만 버틸 만 했다. 갤리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갤리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이 뻑뻑해 잠깐 감고 있자고 생각했는데 잠이 든 모양이었다.

"갤리 씨?"

"...안녕하셨어요."

갤리는 어물어물 인사를 했다. 잠이 덜 깬 건지 머리가 몽롱했다. 안녕하셨어요. 뉴트가 인사를 하고 맞은편에 앉아서 간단하게 음료수를 주문했다. 점원이 음료를 가지고 다시 오기까지 룸 안은 조용했다. 갤리는 마른 세수를 몇 번 더 했다. 눈이 조금 흐렸다. 점원이 다시 문을 닫고 나가고 나서, 발 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뉴트는 기다렸다. 말을 아끼고 삼키다가 뉴트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 드렸어요."

"아, 네."

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뉴트가 아이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시간이 이상하게 길었다. 갤리는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소문이 돌아서요."

"소문이요."

갤리는 머리를 굴렸다. 소문이라. 자신에 관한 소문이라면 자기보다는 매니저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이런 건 원래 본인에게는 잘 들어오지 않는 법이기도 한데다 매니저가 더 민감한 탓도 있으니까. 딱히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나 걸리는 것은 없었다. 갤리는 이제는 다 녹아내린 자신이 시킨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아직 차서 그런지 목이 탄 것에 즉효였다. 그리고.

"-라고 하던-"

"욱."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컵이 탁자 위에 떨어졌다. 갤리는 입을 막았다.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바닥에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머리를 울려서 어지러웠다. 머리가 아파왔다. 아까 넘겼을 때보다 훨씬 강렬한 두통과 오한이 갤리를 뒤덮었다. 어지럽고 세상이 빙빙 돌았다.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등줄기가 서늘하게 저며왔다. 복통은 없었지만 온 몸이 아파왔다. 눈 앞이 혼미했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멀어졌다.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