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D/메이즈러너

[뉴트갤리] If I were not (9)

ㄷㄷㄷㄷ 2023. 1. 26. 11:02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파티는, 나쁘게 말하면 조잡했다. 드레스 코드가 없다고 하기에 일부러 촌스러운 복장을 골라서 대강-헐렁한 청바지에 체크 셔츠, 뿔테 안경-입었다. 나올 때 지나치게 격식이 없는 복장이 아닐까 고민을 했는데 웬 걸, 오히려 그래서 더 분위기에 잘 녹아들 수 있었다. 그냥 평범한 집 정원에서 열리는 평범한 홈 파티였다. 다들 대강의 편한 옷을 차려 입고 와서 맥주나 탄산음료를 마시고 테이블에 차려둔 핑거 푸드를 먹으며 서로 담소를 나누는 정도였다. 오죽하면 가장 격식 있게 입고 온 사람이 목 부분에 옷깃이 있는 면 티셔츠를 입고 온 갤리일 정도였다. 이게 축하 파티라는 걸 알 수 있는 증거는 머리 위쪽에 늘어진 '갤리 우승 축하'라고 써있는 초등학생이 손으로 만든 것 같은 장식 카드와 초반부에 있었던 건배사 정도였다. 뉴트는 카나페-집에서 직접 만들었다기엔 모양이 꽤 잡혀있었다-를 우물우물 씹으며 어색하게 혼자 서 있었다. 갤리는 코치 부부에게 잡혀 약간 쩔쩔 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초반부에는 뉴트를 주변인에게 소개해 주려는 노력 정도는 했지만 분위기가 있다 보니 그렇게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건네기는 역시 어려운 모양이었다. 뉴트는 꽤나 신선한 기분을 느끼며 작은 샌드위치와 음료수 따위로 우물우물 식사를 했다. 파티에 와서 이렇게 열심히 음식을 먹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뉴트는 말이 걸렸을 때 반응이 조금 늦을 수 밖에 없었다. 매니저라고 소개 받았던 사람은 웃고는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자주 보던 표정이었다. 뉴트는 얼떨떨한 척 괜찮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매니저는 목이 타는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 하십니까?"

"아직, 학생이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학비를 벌고 있습니다."

"인턴 일 하셨다면서요? 고되었을텐데."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경험이니까요."

"양궁 쪽을 지망한 데에는 뭔가 동기라도 있습니까?"

어지간히도 꼬치꼬치 캐묻네. 뉴트는 어색한 얼굴 뒤로 빈정거렸다. 어쩌다 알게 된 사이에서 묻기에는 단속이 심한 편이었다. 보통 스타로 떠올라 대규모 파티에 초대 받곤 하는 운동 선수들은 대부분 대인 관계적 측면에서 뛰어난 사람이고 해서 매니저를 직접 본 적은 없는데. 하긴, 그런 사람들로만 초대한 걸 수도 있었다. 뉴트는 음료수를 한 모금 머금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냥, 축구 쪽에 자리가 없대서요."

"생각보다 성의 없는 이유인데."

매니저는 작은 연어 키쉬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목이 메는지 캔맥주를 쭉 들이켰다. 꽤나 호쾌한 동작이었다. 

"양궁에는 관심 없어요?"

"정적이잖아요."

어깨를 으쓱 움직이자 매니저가 집중하는 사람이 얼마나 근사한지 모른다며 피식 웃었다. 갤리 말고 또 아는 양궁 선수는 없나봅니다? 뉴트는 잠깐 기억을 되새기고는 몇 개의 이름을 댔다. 다 복식 경기 출전자네요. 매니저가 피식 웃었다. 세계 순위와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명단이었다. 뉴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꼬치 요리를 집어들었다.

"거의 관심이 없었나 보네요."

"그렇죠 뭐."

가끔 올림픽 때만 챙겨보고... 일부러 음료수를 마시며 말을 흐리자 매니저가 웃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눈으로도 웃고 있었다. 마음을 얻어냈다는 뜻이었다. 뉴트는 괜히 웃으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갤리는, 좀, 사회를 몰라요. 아시겠지만."

"...예."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유하게 넘어간 편이었다. 아예 사람을 떼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까지 한 것도 아니었고, 사람을 조사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간단한 질문 몇 개가 끝이었다. 그렇게까지 주의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자신의 생각이 극단적인 건지. 뉴트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건 뉴트는 쓰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키쉬는 꽤 맛있었다. 뉴트는 웃었다.

-

갤리는 약간 얼큰하게 취한 후에야 뉴트에게 올 수 있었다. 기껏해야 맥주 한두 캔이었지만 술을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다 보니 더 약한 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뉴트는 이제 느긋하게 앉아서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 있었다. 갤리는 옆 자리에 주저 앉았다. 뉴트가 라디오를 끄고 돌아보았다.

"미안해요."

갤리가 웅얼거렸다. 뉴트가 반문했다. 저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많은 데, 데려와서."

"...나도 알고 온 거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갤리는 푸스스 웃었다. 뉴트는 식탁 한 켠에 놓아두었던 감자튀김을 내밀었다. 갤리는 약간 둔해진 손놀림으로 케첩을 듬뿍 찍어 우물거렸다. 뉴트는 라디오를 다시 켰다. 몇 번 채널을 돌리자 축구 중계가 한창이었다. 올림픽 결승전인 모양이었다. 코치와 매니저는 아예 거실에서 고성방가를 하고 있었다. 신고 당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네. 뉴트가 투덜거리자 갤리가 웃었다.

"내일은 선수들끼리만 또 모인대요."

"재미있겠네요."

"네, 그래서..."

갤리는 문득 마른 세수를 했다. 굳은 살 모양대로 말랑한 편인 코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술을 마셔서인지 어두워서인지 눈 앞이 침침했다. 갤리는 말을 돌렸다.

"집에는, 좀 이따가 감독님이 태워다 주신다고 했어요."

"그 분이요?"

"네. 차를 모셔야 해서 술은 안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제일 잘 드실 것 같았는데 좀 의외네요."

"사실 별로 즐기지도 않으신대요."

"그런가요."

"네..."

다시 말이 끊겼다. 라디오가 공백을 채우고 끼어들었다. 승부가 나지 않아서 연장전으로 접어든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동선수들은 힘들겠네요."

뉴트가 불쑥 말했다. 갤리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 뭐라고 대답할지 허둥대었다.

"그냥, 하니까요."

"그래요?"

"그... 저렇게, 점수 차가 안 나면, 확실히 힘들기는 하지만."

"낮에 야외에서 하시니까, 해가 따가울 거 같은데."

"그래서 그, 선크림을, 많이 발라요. 그래도 가끔은 많이 타서 벗겨지지만."

"아프겠네요."

갤리는 뭐라 더 말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뉴트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은 한참이나 말 없이 앉아있었다. 거실에서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집에 가 봐야겠다, 좀 더 있다 가시라, 역까지는 데려다 주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막차가 끊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웅얼거리는 소리라 확실히 알아 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강은 알 수 있었다. 뉴트도 갤리도 서로 말 없이 주섬주섬 핸드폰 따위를 챙겼다. 그래도 당장 갈 것은 아닌지 여전히 왁자지껄한 소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연장전이 반 정도 지나가고 있었다.

"저기."

"예."

"즐거우셨어요?"

갤리가 어눌하게 물었다. 술이 깨기는커녕 더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뉴트는 고개를 그냥 한 번 끄덕였다.

"키쉬가 맛있더라고요."

"다음에, 가게, 알려드릴게요."

"고마워요."

"작은 데지만,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아까 사과도 했으면서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어지간히 정신이 없거나 어색한 모양이었다. 하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이 고작 두 번째다. 문자로도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정제된 글자와 직접 보며 말로 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뉴트는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연장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양쪽 팀 중 어느 쪽도 골을 넣지 못했다. 승부차기까지 갈 모양이었다. 뉴트는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더 줄였다. 거실에서 나누는 대화는 점점 더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문득, 갤리가 한 번 더 사과했다. 뉴트는 갤리를 바라보았다. 갤리는 거의 테이블에 고개를 박다시피 하고 깍지 낀 손을 뒷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갤리가 한 번 더 사과했다. 미안해요. 뉴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과할 만한 게 있나. 걸리는 것이 없었다. 아주, 희한한 경험이었다.

"저는, 꽤."

"......"

"당신에게서 축하 받고 싶었나 봐요."

라디오에서 해설자가 탄성을 질렀다. 승부차기에서 드디어 승리를 거머쥔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왁자지껄하게 작별 인사를 하는 소리가 났다. 감독이 이제 정말 떠날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원은 조용했다.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