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커크] 성장의 물약 (10)(완결)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일부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에 의존하여 쓰고 있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커크는 말을 골랐다. 언어와 단어 사이에 끼어있는 쓸데없는 의미를 없애려고 해보았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그곳에 가지 않는 게 아니라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스팍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커크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떨어진다고 해도 나는 네 친구일 것이고, 잊지도 않을 것이며, 잊을 수도 없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 걸까. 단 몇 달 전의 당사자조차도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커크는 그것이 더 어려웠다. 커크는 아주 드물게, 말을 더듬으며 말을 꺼냈다.
"벌칸은, 스팍, 벌칸은 아주 멀어."
"긍정합니다. 그러나 연방이 창설 되기 이전부터 그 거리는 법적으로 '감내할 만한 희생'으로 표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아니,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커크는 다시 말을 조타했다. 커크가 호흡을 고르는 사이 스팍은 말을 잇지 않았다. 커크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그곳에서 익숙해져야 할 거야, 스팍. 오늘도 네가 아니었으면 너희 가족과 식사하기는 힘들었겠지. 뭘 좋아하는지, 뭐가 실례가 되지 않을지 나는 모르니까."
"그건-"
"나는 매우, 매우 오래 배워야 할 거야 스팍. 나 혼자서."
"제가."
스팍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커크는 스팍이 뭐라고 하려고 했는지 알았다. 자신이 도와주겠다. 그 오랜 기간과 시간을, 자신이 옆에 있어주겠다고. 커크는 웃었다. 생각만으로도 고마운 말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해 주었었는지, 커크는 기억할 수 없었고, 생각 또한 힘들었다.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커크는 기뻤다. 하지만 스팍의 얼굴은 어둡다 못해 약간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무어라 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커크는 시큰하게 달아오른 눈을 숨기려고 몇 번 깜박였다. 커크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뭐, 그 외에도 나는 영주권이라도 얻으려면 너희 어머님이나 아버님 추천이라도 받아야 할텐데, 부모님은 아셔?"
스팍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피하는 눈치였다. 지구의 습관이 많이 익숙해졌다고 커크는 웃었다. 커크는 텐트 안 자기 옆의 자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스팍은 그 동작 언어를 알아들었는지 옆으로 와서 앉았다. 커크는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조금 막힌 것 같은 코를 조금 훌쩍거렸다. 그리고는 스팍이 눈치채지 못하게 다른 말을 꺼냈다.
"여름 하늘에는 벌칸이 보여?"
"벌칸은 항성이 아니므로 지구에서는 육안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벌칸과 가장 가까운 항성을 말씀하시고 싶으시다면 그 역시 육안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생각보다도 더 멀었다. 그 먼 곳에서 스팍은 지구로 왔고, 자신을 만나기까지 오래였을 것이다. 커크는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최소한 학교에서라도 스팍은 혼자였을 것이었다. 그 오래고 긴긴 기간을. 커크는 그저 미안해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벌칸에 도착하면, 연락해. 언제든 받을 테니까."
"적어도 한 달 후에 출발합니다. 맥락이 이상한 대화군요."
"...그래."
그래라. 하여간에 벌칸이란. 커크는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된다는 허락을 맡은 하에 스팍의 머리를 잔뜩 흐트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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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서 연락이 왔다. 특별할 것 없는 광고였다. 오늘 파티가 열리니 올 사람은 오라는, 대강의 내용이었다. 노트에다 항성 간 이동 기술에 관한 신연구 논문 구절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표시하던 커크는 펜 뒤꽁무니로 머리를 긁었다. 오늘은 스팍이 오지 못한다고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착착 흘러가 벌써 2주일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지 스팍이 오지 못하는 빈도는 점점 늘어갔다. 커크는 냉장고 속을 잠깐 생각하고는 오랜만에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같이 먹을 사람도 없는데 요리를 할 마음이 나지를 않았다. 대강 저녁을 때우고 들어와 자고 일어나면 될 것이었다. 커크는 그렇게 계획을 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이크는 여전히 매끄럽게 움직였다. 정비까지 잘 해뒀는데 당연할지도 모른다. 도서관 근처에 자주 와야 하다 보니 다시 소리가 안 나게 개조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당장 오늘도 책을 반납해야 했다. 대출 반납을 자주 반복하다 보니 도서관 직원이 커크를 외우려 했다. 평소하고 복장을 좀 다르게 해서인지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을 보듯 좀 시큰둥한 편이긴 했지만. 오늘은 책을 빌리려 하지 않았는데 새로 들어온 책 사이에 흥미로운 책이 몇 권 보여 결국 다시 가방을 부풀려버렸다. 정말 저녁만 먹고 나오게 생겼네. 커크는 무거운 가방을 추슬러 메며 생각했다. 그쯤해서야 해가 지고 있었으니 잘 생각한 것이기도 했다.
술집에 도착해 바이크를 대어두고 들어가려다 커크는 픽 웃어버렸다. 바로 그 앞이 스팍을 만난 곳이었다. 장소만 같다 뿐이지 시간도 사람도 이렇게나 달랐다. 커크는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 잠깐이었고, 커크는 시계를 보곤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은 스팍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집에 그나마 일찍 들어가야 했다. 지금 들어가는 것도 많이 늦은 셈이어다.
술집 안은 붉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안주거리 중 적당히 식사가 될 만한 것을 시키고 음료를 홀짝이다 커크는 문득 반짝이는 배지를 보고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스타 플릿이었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얽혀서 좋은 일이 없었다. 일진이 안 좋으려는 모양이었다. 이 시골 마을에 볼 게 뭐 있다고 이렇게 전세 내다시피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커크는 최대한 빨리 식사를 하고 사라질 셈으로 최대한 평범하게 녹아들기 위해 안 그래도 조금 더 구석으로 들어앉았다. 음식이 나오고 커크는 무알콜 음료-그래봐야 탄산음료 정도였지만-를 한 잔 더 주문하고는 대강 먹기 시작했다. 한 켠에서 와그르르 웃음이 터지다가 잦아들었다. 심지어 점차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싸움이 붙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커크가 그것을 눈치챈 순간 사람 한 명이 커크의 테이블로 거의 날아들었다. 사실, 날려온 거긴 했지만. 테이블이 뒤집혀서 반 쯤 먹은 식사가 셔츠로 떨어져 내렸다. 심지어 방금 전에 나온 체리콕까지 덮어썼다. 커크는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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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단다."
자신을 크리스토퍼 파이크라고 소개한 중년의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가슴에서는 역시 스타플릿 배지가 반짝였다. 민간인과의 마찰이 있었으니 장교를 파견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술집은 자신과 파이크가 앉아있는 자리를 제외하면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커크는 수건으로 터진 입가를 닦다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네 성적을 살피니- 거의 항상 최고치더군. 죽음을 그렇게 헛되게 만들 수는 없지 않니. 스타플릿에 들어오렴, 제임스."
"할 말은 끝나신 겁니까?"
대화를 더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파이크가 차트를 내밀었다. 꺼내보니 대강의 입학 서류 따위였다. 써야할 부분까지도 꼼꼼히 표시해 두었다. 커크는 헛웃음을 흘렸다. 차트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파이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짐, 우주야. 더 넓은 세상이야. 이 좁은 아이오와보다도, 더."
"...우주요."
"그래 우주."
우주(Space). 커크는 뭔가에 홀린 듯이 발음했다. 그 짧은 발음 끝에 무엇이 걸려있는지는 커크만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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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은 그 날도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이 커크의 집을 찾았다. 커크는 아마 점심을 막 치웠거나, 준비하고 있거나, 혹은 이불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라고 스팍은 확률로 짐작했다. 먼 거리였지만 인간의 3배인 체력으로는 그럭저럭 감내할 만 했다. 이렇게 한 번 가고 나면 일일 적정 운동량이 채워지는 데다 커크가 고생했다며 자리를 내어줄 것임을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커크는 어서오라며 맞아주기도 했고, 자리와 함께 차를 내어주기도 했다. 커크는 오늘 그 맞은 편에 앉는 대신 방을 분주히 오가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스팍은 그 동작을 알았다. 집에서 자신이 반복하고 있는 동작이기도 했다. 커크는 짐을 꾸리는 중이었다.
"어딘가, 가시는 모양입니다."
스팍은 문득 자신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했다.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이것은 분명 무례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팍은 그 말을 철회하는 시늉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커크가 동작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응. 멀리."
스팍은 고개를 들어 커크와 눈을 마주쳤다. 커크는 웃고 있었다.
"스타플릿에 갈 거야 스팍."
스팍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커크는 스팍을 보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스팍은 커크가 저렇게 기뻐하는 걸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스타플릿에 가서, 우주로 나아갈 거야. 어쩌면 말이지, 외교미션을 수행하면-"
커크는 중간에 말을 끊고 테이블 위에 있는 곽에서 티슈를 몇 장 뽑아 스팍의 손에 쥐어주었다. 스팍은 자기가 조금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벌칸에 오래오래 있을 수도 있을 거고."
많이 창피하고,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스팍은 티슈로 얼굴을 가리다시피 했다. 찍어낸 눈물은 기껏해야 한두방울이었지만 감정을 노출시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스팍은 커크의 웃음이 잦아들었을 때 티슈를 치우고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느 정도 걸립니까?"
"응?"
"지구에서 벌칸으로 오기까지."
"글쎄, 공부를 마치고, 교관으로 의무 복무하고 하면 몇 년 걸리겠지?"
"지나치게 깁니다."
커크가 오, 하고 입을 모았다. 그 '길다'는 표현은 불명료하지 않은 거야? 커크가 놀리듯이 말했다. 말을 돌리려는 심산인 걸 알았지만 이번에는 스팍도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커크의 웃음이 멎었다. 아주 잠깐 침묵이 흐르고, 커크가 약간 떨면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나 멀리?"
"멀지 않습니다."
커크의 목소리는 약간 쉰 것처럼 들렸다. 커크의 눈 주위는 스팍의 눈 주위가 그런 것처럼 모세혈관이 팽창되고, 혈류가 몰려서 색이 약간 변해 있었다. 스팍은 조금, 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커크가 웃었다. 눈을 접고 웃는 장난기 넘치는 웃음이었다.
"그럼 쫓아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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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안하는 사람은 초록 물약을 딸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나는, 빨간 알약으로 선택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