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갤리] If I were not (5)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뉴트는 일단 갤리가 손을 놓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운동 선수의 악력은 강한 편이다. 눈에 띄는 상해가 없을지언정 강하게 잡힌 것부터가 아프다. 갤리는 거의 쏟아붓듯이 뉴트에게 말을 걸었다. 반쯤은 공황상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
"여기 사는 분이세요? 여기서 근무하십니까? 그게,"
"저기요."
"'여기' 사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저기요!"
뉴트는 조금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를 높인 것이 오랜만이라 이쪽의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갤리는 약간 놀라며 손에 힘을 풀었다. 뉴트는 약간 거칠게 손을 끌어당겨 손목을 주물렀다.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손목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린 손을 몇 번 쥐었다 펴고 있자니 갤리가 우물우물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뉴트는 얼굴을 더욱 굳혔다. 귓속의 이어폰에서 빠르게 경호원들과 비서의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길가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 경호원 출동의 여부, 시간의 비용, 많은 이야기가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뉴트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속삭였다.
"...일단 그냥 둬."
"예?"
"아닙니다."
뉴트는 이어폰에 달려있는 버튼을 누르는 척 했다. 그나마 요즘은 핸즈프리가 많이 나와 그런 척 하기가 편했다. 눈 앞의 남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무슨 일이십니까."
뉴트는 최대한 사무적으로 이야기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갤리에 관한 정보가 복기 되고 있었다. 나이, 지금까지의 행보, 혹시 모를 전과 등 지금껏 자기에게 보고된 수많은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갤리는 당황해서 허둥지둥 말을 꺼내지 못했다. 뉴트의 얼굴은 아주 천천히 찌푸려졌다. 뉴트는 자기가 먼저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약속이."
"-'여기' 사십니까?"
갤리가 말을 끊고 질문 할 줄은 또한 몰랐다. 갤리도 그런 자신에게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으니 서로가 놀란 셈이었다.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갤리도 뉴트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적은 무거웠다. 차 한대 대가 길을 지나 클락션을 울리며 지나갔다. 뉴트는 또다시 독촉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르고 뉴트는 그 말을 반쯤 무시했다.
"아뇨, 여기 안 삽니다. 여행 와서요."
갤리가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그가 들은 말이 당황스럽다는 투였다. 뉴트는 그 표정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뭘 원했던 걸까. 뉴트는 시계를 보았다. 독촉하지 않아도 시간은 알 수 있었다. 뉴트는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입을 뗐다.
"제가 지금 선약이 있어서, 급한 볼일이 아니시면 가도 되겠습니까."
갤리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그리고 안절부절 못하며 쩔쩔 매기 시작했다. 갤리는 제 온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왼쪽 셔츠 주머니에서 펜을, 오른쪽 뒷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들이었다. 스프링이 달린 두툼한 수첩은 요즘 구할 수나 있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갤리는 수첩에 뭔가를 갈겨 쓰더니 종이를 찢어 내밀었다. 숫자의 나열이었다. 자릿수가 눈에 익은 것이 전화번호였다. 갤리는 뉴트가 받아들 때까지 손을 내밀고 기다렸다. 연락해 주세요. 뉴트는 손끝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뉴트는 주머니에 쪽지를 쑤셔넣고 몸을 돌렸다.
차는 두 블럭을 더 가서 코너에 서 있었다. 뉴트는 주변 눈치조차 보지 않고 차에 올랐다. 수행비서가 두꺼운 서류를 내밀었고 경호원이 차를 출발했다. 뉴트는 이어폰을 뽑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주머니가 부스럭거렸다.
"-전화번호를 조회해 볼까요?"
"그래."
뉴트는 쪽지를 비서에게 내밀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머리가 숫자의 나열을 흡수했다. 다음에도 또 기억할지는 미지수지만, 뉴트는 그것을 일단은 읽었다. 뉴트는 문득 손목이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옷소매를 걷어보니 약간 붉은 것이 멍이 들 것 같았다. 그 모양이 마치 문신 같았다. 뉴트는 또다시, 자신의 목덜미를 더듬고야 말았다. 목덜미는 이제 아프지조차 않았다.
-
또한 기나긴 비행을 거치고 나자 갤리는 반쯤 탈진해 버렸다. 숙소의 침대에 눕자 앓는 소리가 절로 흘렀다. 그러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알고 있는 사람을 본 것 같았다. 익숙한 얼굴이 존재한다는 건 갤리에게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익숙한 얼굴은 전부 저쪽에나 있었으니까. 갤리는 '여기' 살던 사람이 아니었다.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익숙하다고 느낄 짬도 없었다. 어쩌면 저쪽 사람일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기분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갤리의 집중력은 약간 형편없어져 버렸다. 핸드폰에 계속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전화와 문자와 간신히 되는 단순한 디자인을 가진 조그마한 기기에 그토록 집중해 본 것은 처음 보았을 때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약간의 집중력이었지만 활에는 치명적이었다. 사람들은 갤리가 처음으로 슬럼프를 맞았다며 수군댔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아주 드문드문 전화가 걸려올 때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감독이었고, 나머지는 매니저였다. 갤리는 다시 연습시설과 집에 처박히기를 반복했다. 화살촉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전화번호를 받아 왔어야 했는데. 갤리는 그렇게 후회했다. 전화를 걸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 연락을 이쪽에서 할 것은 확실하지만, 저쪽에서는 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갤리는 결국 반쯤 포기했다.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사실, 외국인일지도 모르기도 했다. 그럼 연락은 더더욱 요원해지는 노릇이었다. 그저 언젠가는 올 거라고 지푸라기 같은 믿음을 쥘 수 밖에 없었다.
갤리가 우울해하는 걸 보다 못한 매니저는 취미를 만들 것을 추천했다. 갤리는 tv 채널을 되는 대로 돌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보는 것은 대중 없었다. 사람들의 말은 빨랐고,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뛰는 것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공부를 해야하려나. 갤리는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식사는 대부분 사 먹었다. 집에서 해 먹을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를 통해서 신청하면, 날마다 잘 포장 된 음식이 세 팩 도착했다. 데워 먹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끔 샐러드까지 데웠을 때는 낭패를 보았지만 그 외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갤리는 탄산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무릎에는 음식을 올려놓은 상태로 tv를 본다는 아주 일반적인 지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는 편했다.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는 단순했고,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기도 했다.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이것저것 상식을 쌓을 수도 있었다. 갤리가 돌리는 채널이 서서히 고정되었다. 경제학과 사회과학을 다루는 내용도 갤리의 머릿속 한 켠에 천천히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갤리는 인터뷰를 받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매니저가 갤리에게 인터뷰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며 대답을 골라냈고, 서면 인터뷰만 간신히 받을 수 있었지만 서서히 인터뷰어와 대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갤리는 발전했다. 쇼에 출연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했지만, 짧은 인터뷰까지는 녹화방송으로 그럭저럭 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발전했다. 대부분의 경우 갤리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후원하는 회사에서는 당연히 긍정적 반응을 타진했다. 사실 양궁 선수에게 들어오는 인터뷰래 보아야 그 수는 결코 많지 않다. 초반에는 그나마 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좀 크다 싶은 시합이 있을 때에만 드문드문 들어오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갤리는 최선을 다했다. 갤리는 지적인 선수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합에 들어선지 3년이 좀 지난 시간에, 갤리는 국가 대표로 선출되었다. 당연하게 큰 인터뷰가 들어왔다. 팀 단위로도 개인 단위로도 들어왔고, 꾸준히 들어오던 전문 잡지는 물론이고 유명한 일간 신문이나 방송국에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예 없을 정도로, 크게.
갤리는 여전히 핸드폰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